눈을 깜빡여 시야를 선명하게 만들기 위해 애써보았다. 어느 정도 행위를 반복하니 시야는 원래대로 돌아왔지만 정신은 아직도 멍했다. 새삼 충격이라도 받은 건가. 닌자 실격이다 싶어 입 안의 살을 아플 정도로 물자 온 몸을 검게 물들인 사내가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그의 칼끝은 타케야를 향해 쏘아지고 있었고, 어련히 피할까 싶어 지켜보려던 나는 주저앉아 있는 타케야의 모습에 멍하니 그를 부르고야 말았다.
“…하치자에몽?”
“아사히나 선, 배.”
며칠 전부터 다리가 아프다며 투덜거린 게 장난은 아니었는지 꽤 힘겹게 답하는 목소리에는 고통을 억누르는 느낌이 담겨있었다. 검은 사내와의 거리는 이미 상당히 좁혀진 상태였고, 잿빛의 소년은 빈틈투성이인 채로 그 무엇도 하지 못한 채 죽음만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안 돼. 무언가에 홀린 듯 다리를 움직였다. 몸이 상당히 가벼움을 느끼며 타케야의 팔을 휘어잡았을 때는 받아쳐내기엔 늦었음을 깨달은 상태였고, 그를 감싸며 넘어지는 도중 날카로운 칼날이 어깨를 깊게 베고 지나갔다.
“윽….”
“선배!”
“젠장, 쥐새끼 같은 게…!”
사내가 끝장을 내려는 듯 욕설을 읊조리며 단도를 들어올렸다. …죽이는 편이 좋겠지. 그렇게 생각한 것을 마지막으로, 머릿속의 필름이 끊겼다.
***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그래. 푹 쉬도록 해라.”
고개를 꾸벅 숙이고 교장실에서 나온 유우는 가볍게 기지개를 편 후에 주위를 한 번 빙 둘러보았다. 여기저기 소음이 나는 것을 보아하니 위원회의 활동이 어느 정도 마무리 된 상태인 모양이었다. 이제 학급위원장위원회로 돌아갈까 생각하던 그의 위로 둥그런 그림자가 졌고, 의문을 담은 눈동자가 위를 향하자 아주 익숙한 사람이 단번에 뛰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이케이케-.”
“코헤이타?!”
“돈돈!!”
둔탁한 타격 음과 함께 유우의 앞 쪽으로 살인무기가 된 공이 날아왔다. 경악어린 표정을 짓는 것도 잠시, 거리를 가늠해보니 저에게로 오지는 않겠다는 생각을 하며 빠르게 옆으로 피하자 마루 바로 앞의 땅에 공이 크레이터를 만들며 터져나갔다. 유우가 서 있던 자리에도 흙무더기가 우수수 떨어졌다. 언제 봐도 감탄이 절로 터져 나오는 어택이었다. 누구야!! 크게 소리를 치며 나온 교장선생님은 상황을 파악한 후에 부글부글 끓는 속을 애써 누르며 다시 메워두라고 소리를 치곤 방문을 닫았다. 아무래도 범인이 나나마츠 코헤이타인 것을 이미 짐작한 모양이었다.
특유의 호탕한 웃음을 짓던 코헤이타는 시선을 돌리다 유우를 발견했고, 오랜만에 보는 친우가 무척이나 반가웠던 모양인지 단번에 그의 곁으로 달려왔다. 저 멀리서 각각 다른 색의 옷을 입고 있는 아이들이 코헤이타를 쫓아 흐느적거리며 뛰어오고 있었다. 유우는 어색하게 웃다 제 목에 가해지는 힘에 몸을 가누지 못하며 휘청거렸다.
“유우!”
“아파, 코헤이타….”
“냐하하하!! 엄살은!”
“네 힘은 인간의 것이 아니거든?”
장난삼아 유우의 목에 팔을 휘감은 코헤이타가 그의 몸을 잡아주며 호탕하게 웃었다. 체육위의 활동은 아직 끝나지 않은 모양인지 처음 보는 1학년이 다리를 멈추자마자 바닥에 주저앉아 정신없이 숨을 골랐고, 그 옆에서 마찬가지로 숨을 몰아쉬던 츠기야 산노스케가 유우를 힐끔 보곤 고개를 꾸벅 숙였다.
가볍게 손을 흔들어 주어 인사를 받은 유우는 시선을 돌려 타키야샤마루를 보았다. 아직 미숙해보여도 상급생은 상급생인지, 산노스케나 조그만 1학년 보다는 안정적인 상태로 숨을 고르고 있었다. 자신과 눈을 마주치자 꾸벅 인사를 해오는 소년에게, 유우는 눈을 휘며 가볍게 웃어주었다. 5학년 못지않게 많은 시간을 함께 해온 아이였지만 타키야샤마루와 유우는 개인적인 친분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의 동실이 저와의 친분을 전부 가져간 것이 아닌가 의심될 정도로.
“그래서 왜 온 거야? 오랜만에 단련하자는 건가!”
“막 돌아온 사람이랑 단련하고 싶어?! 신입생들한테 인사하러 다니고 있거든!”
“오, 그런가. 어이 킨고! 인사해! 이반의 유우다!”
“아, 안녕하세요! 1학년 하반 미나모토 킨고라고 합니다!”
기겁하며 고개를 젓는 태도에 별 신경을 쓰지 않는 듯 코헤이타가 킨고를 불러 통성명을 마치자 유우는 헛웃음을 지었다. 그래, 예전부터 이랬지…. 중얼거리며 인사를 받은 유우가 제 이름을 아사히나 유우라고 정정하는 동안 코헤이타는 2학년의 토키토모 시로베를 일으켜 세웠다. 방금 전까지 헉헉거리며 뛰던 게 거짓은 아니었는지, 아직도 이마 위로 땀이 송글송글 맺혀있는 채였다.
“아직 달릴 코스는 많이 남았어! 냐하하하!”
“선배, 또 달리시려고요…?! 배구하기 전에 이미 뒷산에 다녀왔잖아요!”
“응!”
“으아아아아아…!!”
뒷산을 한 번 달린 것으론 부족했는지 더 달리겠다고 선전포고를 하는 코헤이타의 모습에 시로베와 산노스케가 비틀거렸고, 킨고는 유우와 대화하던 것을 멈추며 저도 모르게 울상을 지었다. 이거, 애들 죽겠는데. 흘긋 타키야샤마루에게 시선을 던지자 머뭇거리…기는 무슨. 자신을 보며 절박한 표정을 짓는 타키야샤마루의 모습에 유우가 작게 한숨을 쉬며 코헤이타의 어깨 위로 팔을 턱하니 얹었다.
“코헤이타.”
“왜 그래, 유우!”
“오늘은 무리고, 내일 대련하는 건 어때? 그 때를 위해 푹 쉬어두라고.”
눈을 두어 번 깜빡인 코헤이타가 씩 웃음을 지었다. 좋아! 꽤 흔쾌히 나온 대답에 킨고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믿지 못하겠다는 듯 입을 헤 벌렸다. 그 나나마츠 선배가…. 무언가에 홀린 듯 내뱉은 말에 타키야샤마루가 바람 빠진 웃음소리를 내었다. 그 또한 처음엔 코헤이타를 말릴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믿지 못했던 과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유우는 제 목에 둘러진 팔을 치워내며-코헤이타가 힘을 뺐기에 가능한 일이었다.-방으로 가보라며 손짓했다.
그럼 해산! 지치지도 않는지 전혀 변하지 않은 속도로 달려가는 코헤이타의 모습에 체육위의 아이들이 하나둘씩 주저앉았다. 정말, 코헤이타 선배는….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거야…. 헉헉대며 말하는 킨고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준 유우가 웃음을 지었다. 그 녀석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는 거야. 정말요? 불신에 가득 찬 눈빛이 보이자 유우는 곤란해졌다. 아무래도 아직 이해하기엔 어린 아이겠구나 싶었다.
“예전에 조금 일이 있었거든. 그래서 제 선에 들어온 사람들을 강하게 만들려고 하는 거야.”
“대체 무슨 일이….”
“그건 알려주기 힘들고. 정도는 심하지만… 저 녀석은 6학년 중에서 제일 속을 알 수 없는 녀석이니까. 적이 되면 제일 무섭겠지.”
“나나마츠 선배랑 적이요…?! 그거 무리잖아요!”
“뭐, 네가 프로닌의 세계에 나갈 때면 코헤이타도 엄청난 경력을 가지고 있을 테니 당연하지.”
다만 걱정되는 건 너희가 코헤이타의 약점이 될 수도 있단 거겠지만. 뒷말을 삼킨 유우가 손을 마저 움직여 킨고를 토닥였다. 마음에 칼날이라 쓰고 닌자라 읽는다. 프로닌이 된다면 그 이전의 연이 어떠했던 제 자신이 우선순위에 오를 수밖에 없다. 때문에 이사쿠나 도이 선생님은 우수한 실력자임에도 불구하고 닌자에 어울리지 않았다. 코헤이타야… 알 수 없는 녀석이니, 예상 외로 닌자에 적합할 지도 모르지. 소리 없이 자리에서 일어선 유우는 아이들에게 나중에 보자며 인사를 하고 빠르게 생물위 쪽으로 향했다. 가장 걱정되는 후배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 * *
“토리와카~ 이거 어디다 둬야해?”
“타케야 선배가 저 우리 옆에 두라고 하셨어!”
“마고지로, 그것 좀 가져와줘!”
“어, 어…. 알았어….”
다른 위원회에 비해 많은 수의 신입생들이 열심히 돌아다니고 있는 광경을 본 유우가 쓰게 웃었다. 바로 위의 선배가 졸업하면서, 지금의 6학년 중에서는 생물위원장을 맡을 사람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본래는 누군가가 있어야 했지만…. 그리운 얼굴이 잠시 스쳐지나갔다. 유우는 제 뺨을 가볍게 두드리곤 제 키보다 큰 판자를 낑낑거리며 옮기는 신입생의 손에서 물건을 쏙 빼내었다.
어라? 제 손이 비는 것을 느낀 유메사키 산지로가 의아한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좀 전에 보았던 미인이 웃는 얼굴로 판자를 들고 있는 모습에, 산지로는 입을 벙긋거리며 딱딱하게 굳어버리고 말았다.
“무거운 건 선배를 좀 시켜도 될 텐데 말이야.”
“아사히나 선배?”
“마고헤이. 너는 생물에게서 좀 눈을 돌릴 필요가 있어.”
“하지만 쥰코는 저와 떨어질 수 없는 사이인 걸요! 그치, 쥰코~”
“애정을 들이붓기만 하면 소용없다니까….”
고개를 저은 유우가 타케야는 어디에 있냐며 묻자 마고헤이는 잠시 연장을 챙기러 갔다며 대답했다. 보러 온 사람이 부재중이라니, 이 무슨 불운이야. 뚱하니 내뱉은 말에 산지로가 정신을 차리며 제가 다녀올까요! 하며 급하게 달려갈 준비를 했다. 이제 곧 오겠지. 신경 쓰지 마. 손을 내저은 유우가 휘적휘적 걸어가 우리 옆에 판자를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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