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아, 틀렸어. 아이스크림이 땅에 떨어진 이상 난 살아갈 의미가 없어…. 돈이 손에 들어오면 써버리는 못된 버릇 때문에 써야할 몫과 간식 값을 제외하곤 용돈을 모조리 통장에 넣어버린 내 자신을 처음으로 원망했다. 며칠 후면 아빠가 오시니까 오늘 하나만 먹고 참으려 했는데. 아이스크림을 삼일에 한 번은 꼭 먹어줘야 하는 나로서는 절망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돈은 한 푼도 없고, 오늘 먹지 못하면 일주일을 넘길지도 모른다니. 울고 싶을 정도로 슬픈 내 마음을 누가 알리오…! 10년을 넘게 같이 지낸 소꿉친구 씨가 알면 한심하게 쳐다볼 것이 틀림없을 생각을 하며 소년을 보았더니, 의외로 키가 큰지 고개를 좀 많이 올려야 했다. 내 키가 작긴 하지만 꽤 큰 편이다. 180정도 될 것 같은데.



"저, 정말 죄송해요."



우물쭈물하며 말을 건네는 모양새가 꽤나 귀엽다. 주근깨가 있긴 하지만 그마저도 매력 포인트로 보일 정도로 잘 어울린다. 아니, 요즘은 주근깨도 하나의 모에 요소긴 하지? 물론 내 취향인 시크한 미남에서 벗어나긴 하지만 귀엽다. 아, 상대를 멋대로 평가해보는 건 나쁜 버릇인데. 생각을 훌훌 털어내고 입 꼬리를 올려 웃었다. 일단 받아낼 건 받아내야지.



"그래서 내 아이스크림 어떻게 할 건데?"



친절하게 보이려고 최대한 환하게 웃어보였더니 오히려 움찔거린다. 내 얼굴이 그렇게 무섭니? 내 얼굴에 대한 심각한 고찰을 하고 있자 고개를 푹 숙이며 제 주머니에서 급하게 지갑을 꺼낸 소년이 동전 몇 개를 집어 내 손에 쥐어주었다. 와, 생각과는 다르게 박력 있는데?



"이, 이정도 밖에 없어서…! 죄송합니다!"


"에? 잠…!"



진녹색의 머리칼이 흔들리나 싶더니 부리나케 도망치는 소년의 뒷모습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손 안에서 짤랑 거리는 동전의 느낌이 났다. 곤란한 걸. 돈으로 변상해준건 좋은(데…



"이거, 너무 많지 않아?"



막대 아이스크림 하나에 300엔까지는 안 할 거라고 생각해.




**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좋을 것 같아?"


"…다짜고짜 와서 어떻게 하면 좋을 것 같냐고 물어 보는데 뭐라고 답해줄까?"


"아, 그 때 없었지."


"있다고 생각했던 거냐고! 에어인간이냐?!"


"슈쨩 무섭다니까? 인상 좀 펴."


"누구 때문인데!"



매섭게 소리치는 슈쨩에게 투덜대며 아까 있었던 일을 설명하자 표정이 묘하게 굳어진다. 역시 많이 받았다 싶어 아이스크림을 사고 남은 돈을 세어보았다. 백 엔이 두개, 십 엔이 세 개…. 역시 많이 남았다. 3분의 1도 못쓰고 남은 금액이 조금 부담스럽다. 가만히 생각하다 항상 들고 다니는 동전지갑 안에 동전들을 쓸어 담았다. 그냥 쓸 거냐는 슈쨩의 질문에 고개를 저어보였다. 전부 쓰기엔 내 양심은 아직 깨끗해.


코웃음을 치며 니가? 하는 슈쨩의 말을 살포시 무시했다. 길가에서 주운 지갑을 경찰서에 가져다 줄 수 있는 선량한 시민을 오해하다니, 너무한 거 아닌가 싶다. 지갑을 겉옷 주머니에 넣고 다시 옷걸이에 걸자 슈쨩의 시선이 끈질기게 따라붙는다. 정말 안 쓸 거라니까.



"어쩌려고?"


"가지고 있다가 만나면 돌려줘야지. 아니면 밥을 사주는 게 좋을까?"


"언제 만날 줄 알고 가지고 있는 거야…."


"같은 동네 사람이 아니더라도 한 번 만났으니 다시 이곳에 오지 않을까 싶어서."


"그건 아닐 것 같은데…."


"? 왜?"



그런 게 있다며 고개를 젓는 슈쨩이 얄밉다. 뭔가 알고 있으면 협력을 해달란 말이야. 작게 항의하려 입을 열려는 순간 듣고 싶은 곡이 있다며 악보를 펼쳐드는 손이 보였다. 그가 항상 대답을 회피할 때 쓰는 수법이지만, 결국 넘어가는 내 자신이 참 한심하다. 빼앗듯 악보를 가져와 피아노 앞의 의자에 앉자 그 옆으로 슈쨩이 걸터앉았다.


아, 또 이 곡이야? 익숙한 글자가 박힌 악보에 한숨을 쉬었다. 이제는 눈 감고도 칠 수 있을 정도라니까. River folws in you…. 음악은 잘 모르는 슈쨩이 처음으로 인터넷에서 들어본 후 나에게 이걸 연주해달라고 부탁했었던 곡이다. 이건 새벽에 들어야 좋은데.



"직접 듣는 게 제일 좋아."


"…그럼 슈쨩이 치면 되잖아."


"음악적 감각이 제로인 사람에게 너무 가혹한 거 아니야?"


"그래도 선배는 쳐보려고 노력은 한다구."


"그 선배가 착한 거겠지. 우리 선배님은 좀 본받았으면 좋겠어."


"항상 말하는 이케맨 선배?"


"이케맨이면 뭐해, 후배를 놀려먹으려고 작정을 하는데!"



슈쨩이 이를 으득 갈며 중얼거리는 것이 꽤 살벌하다. 분명 좋은 학교라고 했었는데. 아오바죠사이…던가. 배구강호라고 알고 있다. 항상 현예선 결승까지 가는 학교라고 했지. 슈쨩은 아오바죠사이 배구부의 주장과 같은 학교를 나왔다고 했다. 흐흥-하고 웃다 피아노 건반 위로 손을 얹었다. 아, 스가 선배가 그리워진다.

'드림 > 하이큐' 카테고리의 다른 글

[vivace!] 01. Largo (3)  (0) 2015.11.30
[vivace!] 01. Largo (2)  (0) 2015.11.30
[vivace!]00. 모든 일의 시작  (0) 2015.11.30
Vivace! 기본 설정  (0) 2015.11.30

WRITTEN BY
카키_bean
☆오리캐 출몰 주의 구역★ 하이큐&닌타마 중심 드림을 쓰는 블로그. 백업용.

,

00.



자고로 학생에게 방학이란 공부에 지친 심신을 쉬게 하고, 삶의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는 특별한 기간이라고 생각한다. 밀린 공부를 보충? 배울 것을 예습하는 기간? 하하 엿이나 먹으라고 해. 만약 내가 방학 때마다 성실하게 공부에 임했으면 나는 분명 고등학교 졸업 후에 후회할 것이라고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단언할 수 있다. 실제로 굉장한 범생이였던 우리 오빠는 대학을 가고 나서 고등학교에 대한 추억이 너무 없다며 술만 먹으면 엉엉 울며 나에게 이런저런 불만을 토로해댔으니. 어디서 외모버프를 잔뜩 받고 와서 잘난 것이라곤 얼굴밖에 없는데 울어대니 그나마 있는 장점마저 사라지는 것이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내가 왜 과거 일을 꺼내며 회상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그 특별한 휴일을 만끽하다가 공부를 하든가 밖에 좀 나가보라는 엄마의 등쌀에 못 이겨 집에서 쫓겨난 채 동네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그래, 이제 고등학교 2학년인데 뭘 좀 해야 하긴 하겠지. 그런데 노는 게 좋은 걸 어떡하라는 거야. 툴툴거리며 가까이에 있는 슈퍼 안으로 들어갔다. 가게 안을 감도는 따뜻한 바람이 찬 공기에 오들오들 떨던 나를 감싸왔다.



"요새 안 보이던데. 집에 있었어?"


"제가 어디에 있겠어요…? 연습도 지금 휴식기간이라 할 게 없어요."


"좀 돌아다녀야지. 몸 둔해진다?"


"네에."



꽤 친하게 지낸다고 자부하는 아저씨랑 몇 마디 주고받자 불만이 조금 가시는 것 같았다. 항상 생각하는 거지만 이 아저씨 매력 있단 말이야. 학생 때 꽤 인기 있지 않았을까? 쭉쭉 뻗어나가는 생각을 대충 갈무리해 아이스크림을 하나 꺼내 계산하자 질린다는 시선이 따라 붙었다. 겨울에 먹는 아이스크림이 제일 맛있거든요. 그렇게 보지 말아주실래요.


대충 포장지를 까서 쓰레기통에 넣고 아이스크림을 한입 베어 물자 초콜릿 맛이 풍겼다. 크으, 역시 초콜릿의 풍미란…! 5성급 호텔의 요리를 먹고 감탄하는 손님마냥 행복한 웃음을 지었다. 역시 사람은 단 걸 섭취하고 살아야 해.



"으앗?!"


"?!!"



입 안의 아이스크림을 오물거리며 고개를 끄덕이던 내 어깨에 무언가가 부딪혔다. 덕분에 나는 쥐고 있던 아이스크림의 막대를 놓치고야 말았고, 한 입밖에 먹지 못한 아이스크림은 땅바닥에 제 몸을 던졌다.



"…내 아이스크림."


"죄, 죄송합니다!"



허탈하게 중얼거리자 이 원인으로 짐작되는 소년이 어쩔 줄을 몰라 하며 사과했지만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은 땅바닥에서 형체를 잃어가려는 가련한 아이스크림 하나뿐이었다.



'드림 > 하이큐' 카테고리의 다른 글

[vivace!] 01. Largo (3)  (0) 2015.11.30
[vivace!] 01. Largo (2)  (0) 2015.11.30
[vivace!] 01. Largo (1)  (0) 2015.11.30
Vivace! 기본 설정  (0) 2015.11.30

WRITTEN BY
카키_bean
☆오리캐 출몰 주의 구역★ 하이큐&닌타마 중심 드림을 쓰는 블로그. 백업용.

,

Vivace! 기본 설정

2015. 11. 30. 20:47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내용을 보시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