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앞에서 누군가가 화살에 맞아 쓰러졌다. 여기저기 널린 시체의 일부가 어제까지 웃으며 얼굴을 맞댄 친구들일 것이라 생각하니 속이 뒤틀리는 느낌이 들었다. 눈앞에 안개가 끼듯 시야가 흐려졌지만 소리만은 그 어떤 때보다도 생생하게 들렸다.
발자국 소리. 칼을 휘두르는 소리. 무언가를 던지는 소리. 화약이 폭발하는….
“젠장…!”
익숙한 목소리에 반쯤 감았던 눈을 떴다. 진한 보랏빛의 닌자복을 입은 사람이 흐르는 땀을 닦아내고 있었다. 타케야.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그를 불렀지만 돌아보는 일은 없었다. 소리가 들리지 않을 뿐더러 이런 위험한 상황에서 다른 곳에 정신을 둔다니, 미치지 않고서야. 그렇다면 나는 지금 미쳐있는 걸까? 헛웃음을 지으며 날아오는 표창을 쿠나이로 쳐냈다. 내 손으로 빼앗은 목숨의 수가 어느 정도인지 기억나지 않았다. 첫 살인만큼은 생생하게 기억났지만 그 이후로는 물에 잠긴 듯 뿌옇게 보일 뿐이었다.
***
따뜻한 차를 목 뒤로 넘긴 유우가 눈앞의 아이들을 보았다. 무늬가 박힌 하늘색의 교복이 작고 여린 몸을 보호하듯 감싼 채였다. 이 어린 아이들이 후에 어떤 길을 걸어야 하는 지 아는 그로서는 씁쓸한 웃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닌자의 본질은 정보를 수집하는 것에 의의를 두었지만 그 과정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피를 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어서, 유우는 아직 성인이 되지도 않은 아이들이 무기를 든다는 사실에 꽤 냉소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
선배. 칸에몽이 조용히 생각에 잠겨있는 유우를 불렀다. 맑은 하늘빛의 눈동자가 느리게 깜빡이며 의문을 표하자 그의 눈이 매섭게 빛났다.
“의무실 다녀오셨어요?”
“아니? 아직 안 갔어.”
“팔 아프죠?”
“오, 눈썰미 좋네.”
유우가 눈을 크게 뜨며 감탄사를 내뱉자 칸에몽이 인상을 팍 찌푸렸다. 통증을 다른 사람보다 덜 느끼는 체질 탓에 여러 번 생사의 경계를 넘나들었음에도 경계심이 전혀 없는 자신의 선배를 어찌하면 좋을까. 빨리 의무실에 다녀오시라며 잔소리를 늘어놓는 칸에몽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의미 없는 대답을 연거푸 내뱉던 유우는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쇼자에몽과 눈이 마주쳤다.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어?”
“아뇨, 그저 지금까지 무슨 일을 하셨나 궁금해서요.”
꽤 직설적인 언사에 당황할 법도 했지만, 유우는 그저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오른손으로 턱을 괴었다. 정말 한 집단의 우두머리를 할 만한 인재네. 통솔력은 봐야 알겠지만…·합격점이야.
“지금까지 인술학원에 못 오신 걸 보면 꽤 중요한 일이 아닌가요?”
“응, 맞아. 엄밀하게 따지면 중요한 일의 초석정도.”
그리 말하며 유우는 느긋하게 센베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오독거리여 과자를 씹던 유우가 킬킬 웃음을 지어보였다. 히코시로에게 장난을 치고 있던 사부로도 어느새 그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는 탓이었다. 딱히 말할 건 없는데. 그저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음성닌-소리로 적을 방심하게 하거나 놀라게 하는 닌자-의 일을 한 것이 다였다. 그리 위험하지도 않았고 얻어낸 정보는 섣불리 내뱉을 수 없었기에 난감하기 그지없어 볼을 긁적이고 있자 칸에몽이 지적하던 곳이 좀 더 아파진 것을 깨달은 유우는 제 팔을 주물러 보았다. 이거….
“부어오른 것 같은데.”
“의무실 가셔야죠!”
“아아, 알았어. 가면 되잖아.”
입을 삐죽이며 답하자 칸에몽이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유우를 끌어당겼다. 치료받는 걸 볼 때까지 물러서지 않겠다는 표현에 유우가 남은 센베를 입에 물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칸에몽은 아사히나 선배를 너무 좋아한다니까. 짓궂게 말한 사부로가 당고를 씹어 삼켰다. 그런 그에게 너도 만만치 않다며 쏘아붙인 칸에몽이 유우의 등을 문 밖으로 떠밀었고 치료를 받고 올 때까지 문을 열어주지 않을 거라며 으름장을 놓았다. 내가 너를 이렇게 키웠니! 누가 누굴 키워요! 케마와 똑같은 반응에 웃음을 터뜨린 유우가 고개를 끄덕이곤 일이 있으면 찾아오라는 말을 남긴 채 걷기 시작했다.
**
“실례합니다-.”
“어라. 아사히나군? 꽤 오랜만이군요.”
“그러게요, 이게 대체 얼마만인지….”
“반갑다는 인사보단 다친 곳 먼저 봐야겠네요.”
의무실의 문을 열자 니이노 선생님이 유우를 반갑게 맞이했다. 재회의 기쁨도 잠시, 그가 다친 몸을 이끌고 왔음을 알아챈 니이노는 바로 정리하고 있던 서류를 한 쪽으로 치우며 상처를 볼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크게 다친 건 아니에요. 멋쩍게 웃으며 문을 닫은 유우는 곧바로 제 팔을 내보였다. 검은색의 팔 토시를 내리자 꽤 심하게 부어오른 피부가 드러났고, 붉게 물든 채 부풀어 오른 흔적에 니이노 뿐만 아니라 유우 또한 적잖이 놀라고야 말았다.
‘이렇게까지 부어있을 줄은….’
“상당히 아플 텐데…. 잠시만 참아요.”
비교적 아래쪽의 서랍에서 약재를 꺼낸 니이노가 탕약을 만들기 시작했다. 잠시 물이 끓는 것을 기다리는 동안 약을 바를 모양인지, 연고가 든 통을 꺼낸 그는 유우의 손목을 잡아 고정시키곤 꼼꼼하게 상처 위를 연고로 덮었다. 뒤이어 붕대로 팔을 둘둘 감자 유우가 심하게 다친 것 같다며 투덜거렸다.
선생님, 조금만 자고 일어날 게요…. 갑작스럽게 피로가 몰려오는 모양인지 점점 작아지는 목소리에 니이노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 같아선 편하게 누워 자라고 권했을 테지만, 유우가 밤에도 이불보 하나 깔지 않고 벽에 기대어 수면을 취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대체 무엇이…. 안쓰러운 마음이 그득했지만 상처가 될 만한 이야기를 차마 물어볼 수는 없어 약초를 다시 갈았다.
드륵-.
“니이노 선생님, 약초를 전부 정리해서 가져왔어요. …어라.”
“저쪽에 정리해 두세요. 환자는 지금 잠시 잠들었습니다.”
“환자요? 유우가?”
유우가 잠든 지 얼마 되지 않아 의무실에 들어온 이사쿠가 정리된 약초 무더기를 살짝 들어 보였다. 그는 벽에 기대어 눈을 붙이고 있는 유우를 보고 왜 여기에 있냐는 듯 의문어린 표정을 지었고, 그에 답하며 다음 일을 부여한 니이노는 끓기 시작한 물에 약재가 담긴 주머니를 넣었다.
“다음은 보건위원장에게 부탁해도 될까요? 아무래도 제가 있는 것보단 편할 거예요.”
“네. 맡겨주세요.”
고개를 끄덕인 이사쿠를 뒤로하고 니이노가 몸을 일으켜 방을 빠져나갔다. 잘 정리된 약초 무더기를 한 쪽 구석에 놓아둔 이사쿠는 제 친구의 옆에서 탕약을 달이는 주전자에 부채질을 하기 시작했다. 보아하니 통증 완화와 피로 해소에 좋은 약재가 쓰인 것 같았다. 몸의 내구도가 꽤 많이 닳아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풍경에 이사쿠가 유우를 살짝 노려보았다. 항상 제 몸은 챙기지도 않고. 한 번만 더 다쳐오면 아주 아프게 치료해줄 거라는 말을 농담으로 받아들이는 건지, 아니면 자신이 통증을 덜 느끼기 때문에 우습게 들린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손을 열심히 움직였다.
“고생이네, 이사쿠.”
“으악! …센조, 놀랐잖아!”
“닌자잖아. 방심은 금물이다.”
이 상황에서 쓸 말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돌연 뒤에서 나타난 센조에게 이사쿠는 탕약에 부채질하는 손을 멈추지 않은 채 작게 항의했고, 센조는 그에게 어깨를 으쓱이는 걸로 답했다. 결 좋은 머리를 흩날리며-본인은 고의가 아니었겠지만-몸을 돌린 센조는 꽤 불편한 자세로 자고 있는 유우에게 다가갔다. 어이. 단 한 번의 부름에 유우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센조?”
“그래. 오랜만이군 유우.”
“흐암…. 오랜만… 어라, 나 많이 잤어? 니이노 선생님은?”
느긋하게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펴던 유우가 이사쿠를 발견하곤 주변을 살폈다. 눈을 감기 전까지 제 앞에 있던 선생님이 없어서 당황한 그에게 센조는 방금 일이 있어서 자리를 비우셨다며 일러주었다.
“그런데 웬일이야, 센조? 유우 보러 온거야?”
“뭐 그것도 있다만…. 교장선생님이 돌아오셔서 알려주려고.”
“아, 오셨어? 그럼 가야겠네.”
“기다려 유우. 약은 먹고 가.”
“칫.”
방금 혀 찼지? 아니! 이사쿠가 부채를 들이밀며 매섭게 쏘아보자 유우가 재빨리 손을 저으며 부정했다. 그들을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던 센조는 몬지로라면 회계위원회의 일 때문에 바쁘다는 말만 남기고 홀연히 사라졌다. 역시 다들 많이 성장 했구나… 이 형님은 기뻐…. 응응. 고개를 끄덕이는 유우를 보며 이사쿠는 헛웃음을 지었다. 언제부터 자신들이 그의 동생이 된 것인지 금시초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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